“공자는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 했다. 백성이 국가를 믿지 못하면 나라는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 용인 반도체를 둘러싼 이전론과 전력·용수 논란 앞에서 정부가 보이는 침묵과 모호함은 바로 그 국가 신뢰를 허무는 일이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위정자가 가슴에 새겨야 할 치국의 원칙이다. 국가는 신뢰 위에 서고, 산업은 예측 가능성 위에 선다. 그런데 지금 용인 반도체를 둘러싼 정국은 어떠한가. 한쪽에서는 국가전략산업의 입지를 흔드는 지방이전론이 반복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력과 용수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말들이 이어진다. 그 사이 정부는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하거나 머뭇거린다. 이것은 신중함이 아니다. 국정의 근간인 신(信)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다.
유교의 정치철학은 '정명'에서 출발한다. “명불정즉언불순, 언불순즉사불성(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이라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바르지 못하고, 말이 바르지 못하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는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진정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전략산업으로 보고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이름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가전략산업이라 하면서도 정작 입지와 송전, 용수 문제 앞에서 우회적 언사와 모호한 신호만 내보낸다면, 이는 이름은 전략이고 실상은 표류다. 명분이 바로 서지 않는데 어찌 대업이 바로 서겠는가.
31일,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은 SNS를 통해 안호영 국회의원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1대 2 무제한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가벼운 인기몰이 '멘트'로 치부하기엔 이 시장이 그 동안 보여온 행보가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반격이 아니라 공론의 장으로 나오라는 요구다. 말로 산업을 흔들었다면, 이제는 그 말에 대해 국민 앞에서 책임 있게 설명하라는 것이다. 유교는 공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이라 했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무턱대고 휩쓸리지 않는다. 생각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다름은 밀실의 계산으로 조정할 일이 아니라, 공론의 자리에서 검증받아야 할 문제다. 그런 점에서 이상일 시장의 제안은 갈등의 정치가 아니라 책임의 정치다.
지금 더 준엄하게 물어야 할 대상은 정부당국이다. 국가가 정말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예정대로 추진할 뜻이 있다면 왜 분명히 말하지 않는가. 왜? 장관은 논란의 불씨를 남기고, 왜? 부처는 시장의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하는가? “기신정 불령이행, 기신부정 수령불종(其身正 不令而行, 其身不正 雖令不從)”이라 했다. 윗자리가 바르면 명하지 않아도 일이 행해지고, 윗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명해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 정부가 보여야 할 것은 해명자료가 아니라 태도다. 서야 할 자리에 서고, 말해야 할 때 말하며, 결단해야 할 순간에 결단하는 것, 그것이 위정자의 도리다.
반도체는 선언만으로 지켜지는 산업이 아니다. 전력과 용수, 송전망과 관로, 인허가와 도로, 협력업체와 연구인력이 정교하게 결합되어야 하는 국가 총력산업이다. 이러한 산업을 두고 정치가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하면 국익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략만 남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유교의 의가 요청된다. “견리사의(見利思義)”라 했다. 이익을 보거든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지역의 정치적 득실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산업 경쟁력과 국가 신뢰를 먼저 헤아리는 일이다. 반도체를 표의 논리로 다루는 것은 의를 버리고 이만 좇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특히 국가 백년대계를 좌우할 전략산업을 지역 대립의 소재로 삼는 태도는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는 균형을 말할 수 있고, 지역 발전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논의조차 국가 핵심산업을 흔드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산업을 흔들며 균형을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 반도체 경쟁에서 한 발이라도 밀리면, 그 대가는 특정 지역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치르게 된다.
이상일 시장의 요구는 결국 하나다. 숨지 말고 답하라는 것이다. 이전론이 타당하다면 공개토론장에서 그 논리를 밝히면 된다. '지산지소론(地産地消)'이 반도체 산업의 현실 속에서도 유효하다면 국민 앞에서 설득하면 된다. 반대로 정부가 용인 반도체 프로젝트를 흔들림 없이 추진할 뜻이라면, 대통령은 뜻을 천명하고 장관은 책임 있게 집행 의지를 보여야 한다. 더 이상 어정쩡한 태도로 기업과 시민, 시장과 국가 전체를 불안하게 해서는 안 된다.
유교는 말보다 도리를, 계산보다 대의를 앞세웠다. 지금 정부가 선택해야 할 길도 다르지 않다. 침묵으로 시간을 버는 정치는 있어도, 침묵으로 신뢰를 세우는 국정은 없다. 용인 반도체를 둘러싼 혼란 앞에서 정부당국은 더 이상 숨지 말라. 국가전략산업이라면 국가답게 지키고, 계획이 있다면 분명하게 밝히며, 책임이 있다면 당당하게 행동하라. 그것이 민무신불립의 경고를 외면하지 않는 길이며, 정명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길이고, 무엇보다 위정자가 마땅히 걸어야 할 도리의 길이다.
관련내용: <안호영 국회의원님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님께...용인 반도체를 주제로 용인특례시장인 저와 무제한 토론을 벌일 것을 제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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