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위정이덕(爲政以德)”이라 했다. 정치는 덕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위정자의 품성을 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국정의 방향과 재정의 태도, 위기 앞에서의 절제까지 함께 묻는 말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먼저 새겨야 할 대목도 여기에 있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유가는 불안하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우려도 이어진다. 환율은 민감하게 움직이고, 수입물가 압박도 여전하다. 이 여파는 먼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기름값으로 번지고, 운송비와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며, 결국 국민의 밥상과 장바구니에 닿는다.
이런 국면에서 정치가 먼저 보여야 할 것은 흥분이 아니라 절제다. 구호가 아니라 계산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의 흐름을 보면 위기 대응의 무게보다 선심성 지원의 메시지가 앞서는 듯한 장면이 적지 않다. 민생을 말하지만, 그 방식이 정말 민생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어려운 계층을 돕는 일은 당연히 필요하다. 경기 방어도 외면할 수 없다. 다만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방식의 재정 집행까지 모두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고유가와 환율 불안이 겹친 시기라면 재정은 더 정밀해야 한다. 소비성 자금을 넓게 푸는 방식은 시장에 다른 신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재정의 규모보다 방향을 본다. 이번 조치가 구조를 보완하는 처방인지, 선거를 앞둔 단기 부양인지 살핀다. 그 판단이 흔들리면 원화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원화가 약해지면 수입물가는 다시 오른다. 수입물가가 오르면 국민 부담은 더 무거워진다. 민생을 돕겠다는 정책이 되레 민생 부담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치는 늘 같은 유혹과 마주한다. 돈을 풀면 박수가 나온다고 믿고, 박수가 나오면 민심도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경제는 정치적 구호에 반응하지 않는다. 숫자를 보고, 신호를 보고, 지속 가능성을 본다. 재정이 구조를 보완하는 수단인지, 표를 겨냥한 시혜인지 시장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읽어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넓은 지원이 아니다. 정확한 지원이다. 취약계층은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물류비와 원가 부담에 짓눌린 업종은 더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중소기업이 감당하는 충격은 더 직접적으로 줄여야 한다. 재정은 넓게 흩뿌릴 일이 아니라, 필요한 곳에 분명하게 닿아야 할 공적 수단이다.
대학에는 “재취즉민산 재산즉민취(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라는 말이 있다. 재물을 바르게 쓰지 못하면 민심은 흩어지고, 백성을 위해 마땅히 써야 할 곳에 쓰면 민심은 모인다는 뜻이다. 이 말의 핵심은 단순한 살포가 아니다. 재정을 권력의 도구로 삼지 말라는 경계다. 백성을 위한 재정이어야지, 표를 위한 재정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일수록 이 경계는 더 엄중하다. 이번 선거는 단지 자리를 나누는 경쟁이 아니다. 누가 더 책임 있는 국정 감각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시험에 가깝다. 누가 더 큰소리를 내느냐보다, 누가 더 물가를 안정시키고 지역경제를 지키며 국민의 불안을 줄일 수 있느냐가 본질이다.
3월의 정치가 흥분과 공방으로 흐른 측면이 있었다면, 4월의 정치는 자중과 책임으로 돌아와야 한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거는 더 가까워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인은 말을 앞세우기보다 책임을 앞세워야 한다. 선심보다 원칙을, 박수보다 신뢰를 택해야 한다.
덕을 잃은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도리를 잃은 권력은 결국 민심을 잃는다. 지금 정치가 먼저 경계해야 할 것은 상대 진영이 아니다. 흔들리는 국민의 삶이고, 무너질 수 있는 시장의 신뢰다.
전쟁의 불길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선거 셈법을 먼저 앞세우는 정치는 국정을 맡은 태도라 보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심성 경쟁이 아니다. 물가를 붙들 실질 대책이고, 시장을 안심시킬 분명한 메시지이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절제된 재정 운영이다. 그것이 위정이덕의 뜻을 오늘의 국정에 맞게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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